본문 바로가기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책을 읽고 남기는 글

[책] 연애의 기억 - 줄리언 반스

by 글쓰는 홍차 2019. 8. 25.

 

연애의 기억은 또, 삼천포 책방에서 톨콩님이 추천해서 읽게 되었다. 

매우 몰입감 높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19살의 청년이 중년(40대)의 여인과 사랑을 하게 되면서 일어난 일들을 나이가 들어 회상하는 그런 소설이다. 

줄리언 반스는 특히 '기억'에 관련된 내용으로 글을 많이 쓰는 분 같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도 어렸을 적 헤어진 연인에게 했던 모진 말로 그들에게 닥친 불행에 대한 곱씹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로, 사랑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19살 테니스 클럽에서 만난 딸 두명을 가진 유부녀 40대와 만나 사랑하게 된 이야기인데 10년 동안이나 어떤 식으로든 유지해갔다는 게 신기하다. 수전은 결국 이혼을 하긴 했었나(?) - 따로 살아서 빌리지를 만들어 하숙을 치는데, 그러면서, 알코올 중독 남편에게 맞는 여자였는데 결국 그녀도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다.

왠지, 이전에 3여년 정도 혼자서 맥주를 두 캔씩 마시다가, 술을 엄청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는 알코올이라면 치가 떨리는 (왜 그런지 모르게) 상태가 되어서, 물론 가끔 시원한 스파클링 와인을 한 잔 하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 뒷날 몸이 안 좋은 게 확연히 나타나기 때문인 것 같지만).... 

 

내 생각에, 기억에는 다른 종류의 진정선이 있고, 이것이 열등한 것은 아니다. 기억은 기억하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정리되고 걸러진다. 우리가 기억이 우선순위를 정하는 알고리즘에 접근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 짐작으로는, 기억은 무엇이 되었든 그 기억을 갖고 사는 사람이 계속 살아가도록 돕는 데 가장 유용한 것을 우선시하는 듯하다. 따라서 행복한 축에 속하는 기억이 먼저 표면에 떠오르게 하는 것은 자기 이익을 따르는 작용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단지 추측일 뿐이다 (p.39) 

기억은 자기 편할대로..

 

몇 번의 검열에서도 살아남은 그의 공책의 한 기록, "사랑에서는 모든 것이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다. 사랑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한 가지 주제다." 그는 처음 이 말을 발견한 이후로 계속 이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이 더 넓은 생각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p.304) 

이 말은 정말.. 사랑 기억에 대한 진실한 말이랄까.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라니, 그때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 너무나 많고, 그때는 변하지 않을 거라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어이없는 말이었지. 나는 현재 무성애가 아닌가 할 정도로 사랑에 대해 무감각한데, 한 때 애인이 있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애인에게 투자하는 시간, 돈, 노력, 감정 소모 이런 게 정말 내가 에너지가 터무니없이 넘쳤었구나를 생각하면서 지금에선 꼭 거짓 같다. 

 

 

인생은 일련의 작고 큰 선택, 자유로운 의지의 표현으로만 이루어지며, 그 결과 개인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미시시피 강을 칙칙폭폭 떠내려가는 작은 외륜선의 선장도 같았다. 또 한 가지 관점은 모든 일이 불가피하며 전사의 영향력은 지배적이고, 인간의 삶은 통나무의 돌출부 하나에 불과한데, 이 통나무 또한 거대한 미시시피를 따라 떠내려가고 있으며,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물살과 소용돌이와 우연에 끌려가고 시달리고 두들겨 맞고 꾐을 당한다고 주장했다. 폴은 이 둘 가운데 어느 하나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삶 - 물론 자신의 삶- 이 처음에는 불가피성의 지배를 받지만, 나중에는 자유의지를 발휘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중에 뒤돌아보면서 삶을 재정리하는 것은 늘 자기 입맛에만 맞추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깨달았다. (p.311)

자유의지가 존재하기는 할까. 상황에 따라 그냥 밀려나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아, 그 표현 갑자기 수전이 조운에 관해 말하던 기억이 났다. "우리 모두 그저 안전한 장소를 찾고 있을 뿐이야. 만일 그런 곳을 찾지 못하면, 그때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워야만 해" 그 시절에는 그 말이 절망의 권고처럼 들렸다. 그러나 이제는 정상적이고, 감정적으로 실용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p.332)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모든 것들이 공감이 가는 때가 오는. 

 

그들이 그날 조운의 집을 나온 뒤 그녀가 한 말을 그는 늘 기억했다.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 특히 처음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그렇듯이, 그 또한 삶을 -- 그리고 사랑을 -- 승자와 패자의 관점에서 보았다. 그는, 분명히, 승자였다. 조운은 과거에, 그는 가정했다, 패자였다.
아니 경기에 나서지도 않았다고 보는 쪽이 맞았다. 그러나 수전은 그의 생각을 교정해주었다. 수전은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이야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대실패로 끝났다 해도, 흐지부지되었다 해도, 아예 시작도 못했다 해도, 처음부터 모두 마음속에만 있었다 해도,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단 하나의 이야기였다. (p.341) 

 

아.. 이 구문은 정말 너무 감동적이다. 단 하나의 이야기, 모두 마음속에만 있는 그런 이야기 ( 그런데 나는 그런 게 기억 속에 하나도 남아있지도 않지만, 그것 또한 나의 이야기랄까..)

 

 

이 책을 보면서, 뭔가 옛날 생각이 문득 떠올랐는데, 지금의 기억의 주체가 폴이라서 그런지 수전에 대한 기억 처음에는 매우 신비해하다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버린 연인을 보면서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를 보면서, 나의 신경증적인(시니컬함) 반응에 견뎌야 했던 옛 연인도 이렇게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겠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나 또한 반성의 포인트, 정말 사랑이었던 건지 기억도 안나는 그를 향해, 내가 쏟아부은 에너지나 질투나, 그런 부질없는 것들이 마구 떠오르고 말았다. 

 

시간이 있다면 매우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여름휴가 첫 책으로 매우 깔끔한 선택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