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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책을 읽고 남기는 글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명 - 김원영 변호사

by 글쓰는 홍차 2019. 11. 18.

이 책을 읽는 순간에는 비장애인, 장애인에 대한 차별 그리고 정체성, 그런 것들에 대해서 느꼈다 이런 느낌을 써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표현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선택된 것이 아니라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이건 가상의 이야기였지만, 장애인 차별에 대해서 

산전검사를 통하여 장애를 발견했다면 아기를 지울 수 있는 것인가? 청각 장애가 있는 부부가 그들의 아이를 청각 장애가 있도록 태어나기 위해 정자를 선택한 건 올바른가? 올바르지 않은가? 

 

'너도 이렇게 막 도로 위에서 위험천만하게 달리고 싶냐?'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보지 그래?' 
이 감정은 물론 허세로( 그것도 전형적으로 마초적인) 가득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처럼 저항적인 자기 인식과 세상에 대한 고유의 해석을 토대로, 자신을 비정상이나 결여된 존재가 아니라 고유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할 수 있었다. 자아에 스타일이 부여되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일의 추구는 자신을 '무엇이 아님'이라는 결여가 아니라 '무엇임'이라고 적극적 positive으로 규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무엇이 '아닌 것'이라는 소극적 형태로는 그와 같은 스타일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내가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휠체어의 디자인을 고민하고 그것을 우리 몸에 맞게 조율하며 허세를 부릴 때, 우리는 분명 '정상성의 결여'로서 '나'를 인식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하기 전까지 나는 오직 '정상'이 아닌 상태로 존재했다 나의 외모와 정신의 스타일을 추구하기란 당연히 불가능했다. 
유사한 예는 많다. 미혼은 결혼의 결여를 표현하지만 비혼은 적극적으로 규정된 삶의 스타일이 될 수 있다. '청각장애'는 청력의 부재를 의미하지만, '농'은 농문화의 존재를 전제한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농인이 아닌 아이들은 그전까지 '정상적인 부모가 결여된' 장애 가정의 자녀로 받아들여졌지만, 최근에는 자신을 '농인 부모의 자녀들'이라는 뜻의 영문 축약어인 '코다 CODA(Children of Deaf Adults)'라고 부른다. 코다는 다른 코다를 만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통역사 역할을 해왔던 기억, 수어와 구어 모두를 유창하게 활용하는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나눈다. 코다라는 말도 결국 풀어쓰면 장애를 가진 부모의 자녀라는 의미이지만 이를 결여가 아니라 어떤 존재의 특성을 상기시키는 말로 바꾸고 스스로 '나는 코다입니다'라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순간 스타일이 출현한다. 
이처럼 과거에는 결여나 결핍, 부족함, 기껏해야 '괴물'로 여겨졌던 존재들이 자신의 그러한 속성을 적극적인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흐름은 최근 수십 년간 급격히 확산되었다. (p.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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